한국은 옛날에 조선이라고 불렸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러면 조선사람들은 아무래도 지금의 독일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동질성이
그러면 조선사람들은 아무래도 지금의 독일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동질성이 높아져서모두가 나랑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군요?
네, 맞아요! 질문하신 대로 한국은 옛날에 조선이라고 불렸던 게 사실입니다. 정확히는 1392년부터 1897년까지 존재했던 국가의 이름이 조선이었어요. 이후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죠.
이제 흥미로운 질문인 **'조선시대 사람들은 모두가 나랑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일단 '조선은 독일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동질성이 높았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조선은 근본적으로 단일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였고, 현대와 같은 대규모의 이민이나 다양한 인종의 유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모두가 나랑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으로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복잡한데요, 당시 조선 사회의 특성과 지배 이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1. 강력한 신분 제도와 차별 (동질성 추구와는 다른 맥락)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양반, 중인, 상민(평민), 천민(노비 등)으로 나누어졌고, 각 신분 간의 차이는 매우 분명했습니다.
신분 간의 차이: 같은 조선 사람이라도 양반은 양반답게, 상민은 상민답게, 천민은 천민답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복장, 언행, 거주지, 직업, 심지어 혼인까지도 신분에 따라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이는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각자 자신의 정해진 신분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차등의 논리에 더 가까웠어요.
성씨(姓)의 중요성: 성씨는 혈통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고,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동질성을 공유한다고 여겼지만, 이는 민족 전체의 동질성이라기보다는 가문이나 혈족 중심의 동질성이었습니다.
사회적 유동성 제한: 과거 제도 등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신분제의 벽은 높았고, 지배층인 양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습니다.
2. 유교 이념의 영향과 '다름'에 대한 시선
조선 사회를 지배한 이념은 **성리학(유교)**이었습니다. 성리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강조하며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공동체의 질서를 중시했어요.
동질성 강조 측면 (이념적): 유교 이념은 모든 사람이 인(仁), 의(義), 예(禮), 지(智)와 같은 보편적인 덕목을 갖추고 유교적 질서를 따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인간형'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동질성'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단(異端)'에 대한 배척: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는 사상(예: 불교, 서학)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고 비판적이었습니다. 이는 '생각의 동질성'을 강요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외세에 대한 인식: 중화 사상에 기반한 질서 의식 속에서 조선은 자신을 '작은 중화'로 인식했고, 중국 외의 다른 민족(오랑캐)에 대해서는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시선을 가졌습니다. 이 역시 '문화적 동질성(중화 문화)'에 대한 추구와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배척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현대의 다인종 국가처럼 다양한 '인종적 동질성' 문제가 없었기에 민족적 동질성은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곧 '개인 모두가 사상, 생각, 행동에서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강력한 신분 제도를 통해 사람들을 철저히 '다르게' 구분하고 그 역할과 의무를 강요했습니다. 동시에 유교라는 지배 이념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특정 도덕률과 질서에 순응하기를 요구했으며, 이에서 벗어나는 '이단'이나 '비주류'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즉, 민족적/인종적 동질성은 강했지만, 사회 구조적/이념적 측면에서는 신분에 따른 차별과 이념적 통제를 통해 다양성보다는 규격화된 질서를 추구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